거식증 모델이었던 이사벨 카로가 2010년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키 165㎝에 체중 32㎏의 앙상한 뼈만 남았던 그녀는 죽기 전까지 거식증 반대 운동 모델도 해왔다.
2019년에는 모델 지망생 브라질의 14세 소녀가 거식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났고, 시간 거슬러 196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팝 그룹 ‘카펜터스’의 ‘카렌 카페터스’역시 무리한 다이어트에 따른 거식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거식증’이 무엇이기에 앞길이 창창한 젊은 여성들의 목숨까지 빼앗았을까?
비만에 대한 공포 ‘거식증’
거식증이라 불리는 이 장애의 정확한 명칭은 ‘신경성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이다. 체중이 늘어나는 것과 비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 있어 음식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체중이 비정상적인 경우를 말한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이라는 미 정신의학회가 내놓은 진단 기준에 따르면, △ 음식 섭취를 극도로 제한해 그 나이대의 신체 발달 수준과 건강에 비춰 심각한 저체중 상태를 초래 △ 저체중임에도 체중이 늘어나는 것과 비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함께 체중이 늘어나는 행동의 방해 △ 체중과 체형에 대한 왜곡된 인식 등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있는 사람들은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껴 실제로 말랐는데도 스스로 뚱뚱하다고 인식해 다이어트 하거나 체중 조절에 과도한 걱정과 집착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쉽게 짜증 내며 내성적이고 모범적인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여자 청소년에게서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신현영 의원실에서 조사한 식이장애 환자 인원 중 2022년 기준 거식증 환자는 총 2,335명으로 이 가운데 10대 이하가 543명으로 23.3%를, 20대가 285명으로 12.2%를 차지했다. 특히 10대 거식증 환자가 2018년 275명으로 5년 새 97.5%가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음식 섭취 제한, 과한 운동
신경성식욕부진증이 있는 사람들은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쓴다. △ 음식의 양과 열량에 예민해 음식량을 줄이거나 먹지 않고 채식하거나 극소량의 음식만 섭취하는 등의 회피 행동 △ 운동하거나 활동량을 늘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과잉활동 △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먹은 음식을 토하거나 설사제, 이뇨제 사용 등이다.

식욕을 극도로 통제하고 체중을 감량하기 때문에 건강상 문제가 따른다. BMI(Body Mass Index)인 체중 중량지수가 20~25일 때 정상으로 보는데, 신경성식욕부진증이 있는 사람들은 17 이하로 무월경과 변비, 복통, 추위에 대한 내성 저하와 무기력감, 심각한 저혈압, 저체온, 느린 맥박, 피부건조증, 치아 법랑질 벗겨짐이 동반되기도 한다. 신경성식욕부진증이 장기적으로 지속하면 빈혈증, 신장 기능장애, 심장혈관계 장애, 치아 문제, 골다공증의 신체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식증 발생 원인은?
신경성식욕부진증(거식증)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대상관계를 포함한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신경성식욕부진증은 비만에 대한 공포, 날씬함에 대한 환상 추구의 결과이며 그 이면에는 △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가 되고 싶은 시도 △ 부모의 기대에 순응하며 길러진 자신에 대한 공격 △ 청소년기에 막 발생하려는 진정한 자기의 주장 △ 신체와 동일시되는 적대적 어머니상에 대한 공격 △ 욕망에 대한 방어 △ 타인을 탐욕스럽고 무기력하게 느끼도록 만들려는 노력 등 다양한 무의식적 동기가 밑바탕에 깔렸다고 본다.
행동주의 입장에서는 신경성식욕부진증(거식증)을 일종에 ‘체중 공포증’으로 본다. 미디어를 통해 여성 모델이나 아이돌 스타의 멋진 스타일과 마른 몸매가 매력적이라는 메시지에 반복 노출됨으로써 날씬함에 대해서는 강화가 주어지고, 뚱뚱함에 대해서는 처벌이 주어지기 때문에 여성들은 비만과 과도한 음식 섭취에 대한 공포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공포를 줄이는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 음식을 먹지 않는 행동을 통해 비만, 살찜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어 부적 강화로 작용하며, 이는 점점 더 극단적인 음식 거부행위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인지적 입장에서는 신경성식욕부진증 환자들이 자신의 신체상에 대해 왜곡된 지각을 나타내어 자신의 정상적인 몸 상태를 뚱뚱하다고 잘못 지각하고, 실제 몸매와 이상적인 몸매 간 괴리를 느낀 결과 체중을 줄이기 위한 과도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설명이다. 신경성식욕부진증이 있는 사람들이 날씬하고 마른 몸이 성공과 애정을 얻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믿으며, 인간관계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경우 그 원인을 자신의 몸매 때문이라고 귀인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몸매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타인의 반응을 자신의 몸매와 관련지어 잘못 해석하는 인지적 오류(왜곡)를 보인다는 것이 신경성식욕부진증이 있는 사람들의 주요한 인지적 특성이다.
생물학적 입장에서는 신경성식욕부진증이 유전에 기반 한다고 주장한다. 친척 간 같은 장애 발병률이 높고, 일란성쌍생아의 경우 46%가 신경성식욕부진증이 같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자가 중독이론에서는 사회적, 신체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절식과 과잉활동을 하는 생물학적 이유를 동물 실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굶는 동안 엔도르핀 수준이 증가해 긍정 정서를 경험하고, 이에 따라 신경성 식욕부진증적 행동이 강화된다는 주장이다.
신경성식욕부진증 환자의 치료는 우선 음식 섭취를 늘려 체중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대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체중이 늘어나면 자기 신체상에 대한 왜곡과 불만족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체상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과 인지적 왜곡을 수정하기 위해 인지행동치료와 함께 가족치료가 병행되는 경우가 많다.
약물치료를 통해서도 신경성식욕부진증을 치료하는데, 대개는 식욕 자극제를 처방하거나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 항우울제를 사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