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에서 제천 넘어가는 길
2021년 가을이었다.
서울 집에서 출발, 영월을 거쳐 단양에 갈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단양군은 도담삼봉, 만천하 스카이웨이, 단양구경시장이라는 관광 키워드로 제법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온달산성, 도담삼봉, 석문,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을 짤막하게 둘러보는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상경하기에는 막힐 시간대라 단양군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제천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을 틀었다. 단양에서 제천 넘어가는 사이에 식사할 장소가 보이면 저녁을 먹으려는 소소한 계획을 담아서.
단양은 가는 곳마다 사람과 차로 들끓어 숨이 막히는 듯했다면, 제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경치가 아름답고 자동차가 드물어 드라이브할 맛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제천 가는 길에 평범한 백반집, 구멍가게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 단양에선 그나마 드문드문 보이던 동네 슈퍼가 제천으로 넘어오니 띄엄띄엄 공장과 전원주택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만 보고, 듣던 ‘인구 감소’가 지방에선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이 일 이후 지방으로 출장을 떠나거나 지방에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식당이나 슈퍼마켓을 찾지 못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약간의 음료와 빵, 과자류, 떡과 같은 비상식량을 싣고 다닌다.
트럭은 먹거리와 필수품 싣고
생각을 확장해 작은 트럭에 먹을거리와 생활필수품을 갖추고 동네 슈퍼마켓이 없는 지방 소도시를 다닌다면, 움직임이 불편하지만 당장 물건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진짜 나타났다. 트럭에 빵, 과자, 우유, 아이스크림, 어묵, 소시지, 각종 세제와 휴지와 같은 생필품과 과일 등을 가득 채우고 산 중턱 마을까지 찾아다니는 트럭 말이다.
집에서 2시간 남짓한 곳에 자주 방문하는 농장이 있다. 그 동네에는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운영하는 공판장이 하나 있었다. 농번기에 시원하게 한잔 부딪히는 막걸리며 출출할 때 간식으로 좋은 초코파이와 아이스크림 정도를 놔두고 파는 아주 작은 공판장이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어르신들이 점점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몇 년 전 더 이상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았다.
젊은 사람들은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나를 수 있지만, 어른들은 그럴 수 없었다. 특히 운전을 못 하는 분들이 많았고, 요즘 지자체에서 흔히 운영하는 100원 택시가 운영되는 지역이 아니었다.
어느 날 농장에서 고추를 따다가 체온이 오르자,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간절했다. 혹시나 하고 배달앱을 켜보았지만, 산 중턱까지 배달해 줄 가게는 역시나 없었다.
대충 물이나 한잔하고 아이스크림을 포기하려던 찰라. 각종 필수품을 실은 2.5톤 트럭 한 대가 천천히 농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자 “뭘 좀 드릴까요?” 하고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트럭에서 내렸다.
주변 어른들에게 잡숫고 싶은 게 뭔지 물으니 막대 하드와 빵, 커피가 드시고 싶단다. 주문을 받아 이것저것 손아귀에 쥐고 돈을 건네며 “언제부터 이걸 하셨어요?” 라고 묻자, 트럭 주인은 “은퇴하고 소일거리 찾다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중고 트럭을 장만해 구멍가게 없는 동네만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은 살찌고, 지방은 쪼그라들고
국내 인구 감소는 전 세계 화제다.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출생률 0.7명과 맞먹는 국내 출생률(0.72명)은 놀랍지도 않다.
또 우리나라 전체 고령화율은 18.8%로 29.7%인 일본을 뒤쫓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농가인구 고령화율이 50%를 넘어서 농촌 안에서는 전 연령대 인구가 줄어들어 농가 고령화 현상은 전체 고령화율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서울시가 공개한 2021년 말 기준 서울 시내 편의점 개수는 8,493개. 2006년 2,139개 대비 4배 증가했다. 어디 편의점뿐이겠는가. 은행, 병원, 백화점, 대형마트, 영화관 등 문화시설까지 모든 게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생률이 급격히 줄어드는 마당에 고령화율은 대도시보다 농촌이 더욱 심각하다. 인구 감소가 불 보듯 뻔한 농촌에 누가 인프라를 만들려고 할까. 결국 공공이 감당해야 하지만, 지방 재정 여건은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지방재정자립도는 지자체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올해 기준 전국의 재정자립도 평균은 43.4%. 이마저도 평균의 함정이 있다.
시군구는 차치하고라도 전국 17개 시도의 재정자립도 중 가장 높은 곳은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 재정자립도는 75.4%이며 경기(60.5%), 세종(57.2%)이 뒤를 잇는다.
광역시까지는 재정자립도가 평균에 머물지만, 경남 33.7%, 충남 33.6%, 제주 33.3%, 강원 25.4%, 전북 23.8%로 도 단위로 갈수록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광역지자체 사정이 이러한데 기초지자체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6월 9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낙후도 분석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개선 방향’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중장기 방안 연구’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229개 기초지자체의 낙후도 측정 결과 낙후도 등급이 낮은 곳은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주요 대도시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고, 낙후도 등급이 높은 지역은 강원에서 호남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지역과 접경지역 중심으로 분포했다.
빵 실은 트럭이 주민에게 더 필요할지도
지난해 1,000만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순천시가 생각났다. 전국과 국외에서 순천을 앞다퉈 방문하며 지역 브랜딩에 또한번 성공한 순천시이지만,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과 낙안읍성, 송광사 등 주요 관광지 몇 군데를 빼고는 KTX 역사 앞 동네만 해도 동네도, 사람도 늙고 낙후됐다.
최근들어 정주 인구 늘리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은 몇몇 지자체들은 계절마다 피는 꽃과 자연을 주제로 혹은 휴양과 힐링을 원하는 이들의 수요에 발맞춰 인프라를 갖추고, 지방축제를 기획하는 등 관광객을 관계 인구로 확장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방축제 현장과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가보면 딱 거기까지만 사람이 있고, 10분만 차로 이동해도 사람 그림자 하나 구경하기 힘든 게 지방의 현실이다. 축제 기간 동안만 북적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적막감만 도는 지방에서 관광객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해 지역을 살리고, 인구를 늘리겠다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구 감소가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에 선거철이 되면 양적 서비스를 늘리겠다는 리더들의 구호와 약속은 돈도, 인프라도 없는 지자체의 한계만 점점 드러낼 뿐이다.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빵과 아이스크림을 실은 2.5톤 트럭일지도 모른다.